<기획취재-지역순환경제를 만드는 씨앗 '공동체 기금'(3)(4)> 공동체은행 ‘빈고’, 취업상조회 ‘디딤돌신용금고’

title

▶ 3회 : 자본의 독점을 넘는 신뢰의 공유 – 공동체은행 빈고

공동체기금 세 번째 이야기는 서울시 용산구 해방촌이라는 지역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재기발랄한 실험 ‘공동체 은행 빈고’ 이야기다. 

은행이라고는 하지만 기존 은행의 틀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은행 빈고, 그 시작은 2008년 문을 연 해방촌 게스트 하우스 ‘빈집’이었다. 빈집은 세명의 백수들이 가정집 하나를 임대하면서 시작됐다. 각자 따로 살던 이들이 가지고 있던 전세보증금 4천만원과 은행 대출금 8천만원을 합쳐 1억2천만원의 종자돈을 모아 첫 번째 빈집을 만들었다. 빈집은 주인이 없는 집이면서 동시에 모두가 주인인 집을 지향했다. 게스트 하우스라고는 하지만 주인과 손님의 구분이 없는 공유장소를 꿈꿨다. 그래서 어느 특정인이 소유할 수 없는 ‘비어있는 집’이다. 
세 명의 백수는 빈집으로 돈을 벌지 말자고 생각했다. 집이 소유와 투자의 수단이 되는 순간 괴로움이 시작된다. 하루 2천원의 저렴한 숙박료로 누구든 올 수 있는 빈집의 탄생이었다. 이윤이 없고 자본을 공유하고 노동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한 빈집은 8개월 만에 10명이 넘는 장기투숙객이 애용할 만큼 사랑 받았다.
집 때문에, 집세 때문에 고통받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8개월 만에 두 번째 빈집이 만들어졌고 이런 필요에 의해 빈집의 수는 하나, 둘, 셋, 넷, 다섯… 자꾸만 늘어갔다. 이후 빈집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늘었다가 줄었다가를 반복했다. 현재는 4개 빈집에 3~40명이 함께 살고 있다. 
빈고는 빈집이 늘어감에 따라 발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색됐다. 빈집 안에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자본의 굴레에 얽매이길 거부했지만 여전히 집을 빌리기 위해서는 누군가 보증금을 내고 실제 집주인과 계약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또 보증금을 낸 누군가가 빈집을 나가게 되면 새로운 보증금을 내야 하는 상황도 반복됐다. 빈집이 늘어갈수록, 구성원의 수가 많아질수록 계산은 복잡해졌고 민감한 상황들이 툭툭 불거졌다. 그들은 마을금고를 만들어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공동체 은행 빈고의 탄생이다. 

자본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필요한가?

빈집 사람들은 2010년 6월 ‘빈마을 금고(이후 우주살림협동조합 빈고를 거쳐 현재는 공동체 은행 빈고로 이름을 바꿈)’를 만들어서 여기에 출자금을 모으기로 했다. 여기서 빈집의 보증금을 대출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빈고는 빈집과 계약을 맺고 빈집은 다시 실제 집주인과 계약하는 방식이다. 빈집을 통해 주거문제를 해결한 경험을 한 이들은 빈고를 통해 자본공유를 통한 새로운 공동체의 가능성을 보았다. 거기에는 기존의 금융이 갖고 있는 본질적 문제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우리가 열심히 저축한 돈이 정말 우리 스스로를 위해 사용되고 있는 걸까? 국가와 자본의 배만 불려주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필요할 때 도움이 되어줄까? 내가 저축한 돈이 내 이웃의 어려움을 해결해줄까? 이런 물음들이 이어지자 빈고의 갈 길이 저절로 보였다.

빈고는 ‘자본을 위한 저축을 거부’하는 대신 ‘공동체가 지속되고 확산되는데 기여’하며 ‘공동체가 상호부조하고 공유지를 누리며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목표로 활동을 시작했다. 나와 이웃, 공동체의 행복에 실제 기여하는 은행을 만들고자 했다. 빈고의 조합원은 능력에 따라 출자하고 필요에 따라 이용한다. 출자금의 규모에 상관없이 누구나 1인 1표의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 빈고는 따로 정해놓은 정관 없이 활동가들의 회의를 통해 대출 여부를 판단한다. 이들은 조합원으로 참여한 개인이나 공동체가 대출신청을 하면 그들과 함께 이용계획서를 작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활동가 회의를 연다. 이용계획서를 함께 만드는 과정을 통해 조합원들이 처한 상황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 운영활동가 좌인씨.

빈고 운영활동가 좌인씨는 “빈고 이용 신청이 들어오면 활동가와 조합원이 함께 이용계획서를 만들고 이를 상임활동가들이 살펴보고 논의해서 ‘대출규모’와 ‘이자’, ‘반환 계획’ 등을 결정하고 이를 다시 전체 활동가들과 공유한 뒤 피드백을 받아서 최종 결정을 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대출의 필요성과 적절성은 물론, 조합원이 처한 상황을 더 잘 이해하고 연대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이런 논의구조는 사실 현재 기준이다. 빈고에는 운영활동가, 상임활동가, 대표활동가 등 역할에 따라 구분되는 여러 활동가의 직함이 있다. 운영 방식도 매년 바뀐다. 따로 정해놓은 정관이 없으니 매순간 그 상황에 가장 필요하고 적합한 방식으로 변주된다. 이자 역시 고정되어 있지 않다. 개인 대출은 통상 3%, 공동체는 7%, 빈집은 12% 정도의 이자를 내지만 이 역시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물론, 이런 방식이 가능한 이유는 공동체에 대한 신뢰와 유대가 있기 때문이다. 좌인씨가 맡고 있는 운영활동가의 경우 올해 처음 생긴 직함이다. 조합원 교육과 공동체 연대 활성화를 주요 ‘임무’로 맡고 있다.

▲ 빈고의 창구 모습(?) 이 곳은 빈가게다. 빈고는 월~수 오후 3시~7시까지 이곳에 공동체 은행 빈고 해방촌 지점을 열고 조합원을 만난다.

 

■ 대출 대신 이용, 상환 대신 반환

빈고의 출발점은 빈집의 보증금 문제 해결에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지금은 그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 조합원들은 매달 예금방식(은행예금 등 여유자금을 출자로 전환), 적금방식(매월 일정 금액 출자), 비율방식(수입의 일정 비율 출자) 등 자신에게 편리한 방식으로 출자금을 낸다. 이렇게 모인 출자금은 긴급자금, 채무전환, 병원, 교육, 생활, 여행자금 등 조합원들의 필요에 따라 이용된다.

조합원들의 실제 이용사례를 보자. 한 청년 조합원이 이자율이 24%에 달하는 저축은행 대출상품을 이용하고 있었다. 빈고와 이용계획서를 함께 작성해 대출 원금을 빈고가 갚는 대신 조합원은 빈고에 신규 대출을 받기로 했다. 이자율은 기존 이자의 절반인 12%로 결정됐다. 그런가 하면 다른 청년 한 명은 주식 투자를 위해 대출을 원했다. 빈고는 논의 끝에 이를 거부했다. 자본을 통한 자본의 증식은 빈고의 정신과 맞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출은 거부했지만 다른 방법으로 연대를 모색한 경우도 있었다. 마을에서 가게를 하는 비조합원 주민 한 명이 사업확장을 위해 카드빚을 썼는데 이를 해결하는데 빈고의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사실 이 건이 생기기 전에 빈고에서 예외적으로 비조합원에게 대출한 사례가 있었다. 주민 중 한 명이 다문화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을 만드는데 보증금과 공사비가 부족해 빈고를 찾은 것이다. 빈고는 기본적으로 조합원에 대해 대출을 주고, 특히 개인이 아닌 경우 3인 이상이 함께 하는 공동체 사업일 것과 모두에게 열린 공간일 것을 주문한다. 한 개인이 운영하는 공부방은 그런 조건에 미흡했지만 빈고는 대출을 결정했다. 개인의 사익을 위한 사업이 아니고 마을을 위해 필요한 사업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얘기를 들은 또다른 상인이 카드빚을 막기 위해 빈고를 찾았지만 거절 당한 것이다. 대신, 빈고는 이 주민에게 국가가 지원하는 다른 정책 프로그램을 소개해주는 것으로 접점을 찾아냈다.

이처럼 빈고는 공동체 은행을 지향하는 정신은 공유하지만 그 운용에 있어서는 자유롭다. 개인 대출의 경우 통상적인 한도는 300만원으로 잡고 있지만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요즘은 ‘빈쌈짓돈 프로젝트’라고 해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최대 30만원을 빌려주는 ‘신규상품’을 운영하고 있다. 사람이 살다보면 때론, 아무에게도 설명하고 싶지 않지만 꼭 돈을 써야 할 때도 있지 않을까?

한편, 독자들의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본기사에서는 ‘대출’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정작 빈고에서는 대출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대출(돈이나 물건 따위를 빌려주거나 빌림) 대신 이용(대상을 필요에 따라 이롭게 씀), 상환(빌린 돈을 갚음) 대신 반환(가졌던 것을 되돌려줌), 예금(금융 기관에 돈을 맡김) 대신 출자(공공의 일을 위해 자금을 냄)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를 통해 빈고는 ‘출자자 = 이용자 = 운영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체 은행을 지향한다. 자본에 대한 독점과 그로인한 이윤을 거부하는 빈고의 정신이 녹아있는 운영원리다.

▲ 빈고 조합원들이 사용하는 통장.

■ 공동체 은행 첫걸음은 공동의 필요 찾는 것

지금 빈고는 조합원 약 250명, 총자산 2억6천여만원으로 성장했다. 그 사이 활동폭은 넓어졌다. 개인 조합원뿐만 아니라 공동체 공간과 공동체 활동 단체들도 조합원으로 참여한다. 대표적인 것이 빈고의 해방촌 지점이 개설돼 있는 빈가게다. 공동체 카페인 ‘빈가게’는 빈고에서 1천만원을 이용했다. 이와 별도로 빈고는 100만원을 빈가게에 출자하기도 했다. 그 밖에 다양한 공동체 만행, 공룡, 해방촌연구소, 수유너머도 빈고를 이용했다. 생활공동체 공룡의 경우 우리와 가까운 청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공동체이기도 하다.

우리고장에서 공동체 운동의 싹을 틔우고 싶은 사람들도 빈고를 이용할 수 있다. 빈고는 해방촌이라는 지역에 자리하고 있기는 하지만 지역 제한을 두지는 않는다. 공동체 은행의 취지와 지향에 공감하는 사람과 단체라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공동체 기금과 은행의 필요성에 대해 얼마나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가다. 좌인씨는 “공동체 은행의 첫걸음은 공동의 필요가 무엇인지 찾아내는 것에 있다. 명확한 필요없이 돈을 모으기만 하면 어디에 어떻게 쓸지 머뭇거리게 될 수 있다.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관점은 기획 1회에서 인터뷰한 사회투자지원재단 김홍일 이사장(성공회 신부)의 지적과도 일치한다. 김 이사장은 “무엇보다 지역사회에서 공동체 기금을 운영할 주민 조직이 있어야 한다. 기금을 함께 꾸려갈 믿을만한 파트너 공동체가 있어야 한다. 그와 함께 지역사회가 필요한 수요가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고 말한바 있다.

이제막 이십대를 지나온 청년과 한평생을 빈민운동에 헌신한 김 이사장이 공동체 기금의 성공을 위해 같은 진단을 내린다는 것이 흥미롭다.

빈고는 공동체 은행(공동체 기금)들의 공동체를 지향한다. 빈고에 자원과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마다 빈고와 같은 공동체 은행이 여럿 생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고장에서 공동체 기금을 고민하는 이들이 있다면 빈고의 문을 두드려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지역화폐에서 건강보험까지 우리 손으로

   
▲ 빈고, 빈가게는 물론 해방촌 40여개 일반 상점에서 쓸 수 있는 지역화폐 ‘해방’

빈집에서 출발해 빈고로 이어진 ‘공유의 상상력’은 지금도 계속 진화하고 있다. 지난해는 해방촌이라는 마을 이름을 딴 지역화폐 해방을 만들었다. 빈집 근처에는 오래된 재래시장인 신흥시장이 있다. 빈집 사람들이 신흥시장에서 바자회를 열어서 수익금이 약 90만원 정도 나왔다. 이를 어떻게 하면 더 잘 쓸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신흥시장 상인회와 함께 지역화폐를 만들기로 한 것. 액면가 800만원어치를 발행해서 700만원이 순환됐다. 해방화폐로 빈고에 출자하거나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해방촌에서 해방화폐를 쓸 수 있는 가맹점은 현재 46개다. 해방화폐는 해방화폐발행위원회라는 별도 조직을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다. 빈고는 해방화폐발행에 50만원을 지원하기도 했다. 

‘빈도서관’도 있다. 빈집에 살던 백수 한 명이 공모사업에 신청했는데 덜컥 돼버렸다. 빈집을 포함해 마을 사람들이 갖고 있는 책을 이어주는 가상의 도서 공유 공간을 만들겠다는 계획서를 냈는데 당첨된 것이다. 해방촌빈도서관이라는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여기서 도서 대출과 반납을 관리한다. 집에 쌓아놓은 책을 서로 공유하자는 취지다. 빈도서관을 소개하는 자료에는 ‘각자 소유한 책장을 열게하고 마을 사람들이 다양한 공간(집)을 마실 하듯 방문해 그곳에서 열어둔 책을 서로 빌릴 수 있게 만들어 마을에 공유문화를 확장하고 사람들 간의 교류도 다져갈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고 나와 있다. 7월 개관을 목표로 빈도서관은 지금 한창 진행 중이다. 지역화폐 해방과 환전이 가능한 도서관 가상화폐 빈(bin)도 도입할 예정이라고 한다. 

요즘 해방촌에서 가장 핫한 아이템은 건강보험계다. 올해 시작한 건강보험계는 계원들이 내는 회비를 모아두었다가 누군가 병원을 이용하면 그 비용의 절반을 지원해준다. 계원이 병명, 비용, 내역, 신청금액 등이 포함된 곗돈사용신청서를 영수증과 함께 계원들이 함께 사용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려서 48시간 내에 이의가 없으면 바로 다음날 총비용의 50%가 지급된다. 올 3월 첫 이용자가 나왔는데 ‘알레르기 혹은 천식초기로 의심되는 잦은 기침’으로 인해 병원과 약국을 이용했고 전체 비용은2 만1천450원이 나왔다. 계원들의 이의가 없어 1만700원이 지급됐다. 

빈집, 빈고, 빈가게, 빈도서관, 지역화폐 해방, 건강보험계까지 각자가 처한 문제를 풀어가는 공동체의 방식은 한계가 없다.

 

 4회 : 실업을 해결하는 연대의 손길 – 취업상조회 디딤돌신용금고  

 

가난은 나라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지난 1997년 말 한국사회에 불어닥친 IMF 외환위기는 그 말을 명징하게 증명하는 역사의 한 장면이다. 나라 경제는 곤두박질쳤고 많은 사람들이 구조조정과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으로 직장에서 내쫓겼다. 그 후로 18년의 세월이 흘렀다. 고난의 시간을 견뎌낸 우리 사회의 현재 모습은 어떤가. 비정규직 900만 시대의 초라한 풍경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여전히 많은 이들이 불안한 노동으로 위태로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가난은 정말 나라도 구제하지 못하는 걸까. 그 물음에 전혀 다른 답을 하는 이들이 있다. 나라가 구제해주길 기다리지 말고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구제하자고. 내가 너를 도우면 너도 나를 도와줄 것이라는 평범한 믿음으로 연대와 공존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1998년 경남 지역에서 활동하던 시민단체 등 60여 곳의 사람들이 그런 마음으로 만든 것이 ‘실업대책을 위한 범국민운동 경남본부’였다. 실업자들을 위한 긴급생계 지원을 위해 결성된 단체였다. 이듬해 4월에는 실업자 종합지원센터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들의 활동은 2년만에 심각한 위기에 봉착한다. 1998년 5월 시작된 정부의 공공근로 지원사업이 2000년 이후 수치상 실업률이 하락했다는 이유로 계속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다시 같은 질문에 맞딱드렸다. 가난은 정말 나라도 구제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누가 해야 하는가? 2000년 헌옷재활용사업단 소속 노동자 103명이 ‘실업대책을 위한 범국민운동 경남본부 취업상조회(이후 2003년 사단법인 경남고용복지센터 취업상조회로 전환)’를 만들었다. 디딤돌 신용금고는 거기서부터 시작했다.

 

■ 월세 보증금 100만원 앞에 무너지지 않기

취업상조회 회원들은 가난과 고용, 노동의 상관관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은 직장에서 쫓겨나는 순간, 일을 잃어버리는 순간 가난의 구렁텅이에 빠져 든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한번 빠져든 구렁텅이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자리는 목숨과도 같은 것이었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 ‘해고는 살인이다’는 말이 등장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일 것이다. 취업상조회는 스스로의 직장과 노동을 지키기 위해 뭉쳤다.

취업상조회는 △비정규직1(50세 이하 여성) △비정규직2(50세 이상 여성) △비정규직3(남성) △우렁각시(가사관리) △간병1(돌봄) △간병2(보호자없는 병동) △간병3(간병) △자활(기초수급자) 8개 분회 256명이 속해 있다.(2014년 12월31일 기준). 이들은 상조회를 통해 단단히 엮여있다. 지난 2000년 처음 상조회를 시작할 때는 △공공근로 △건설 △음식업 △청소파출 △제조업 △경비로 분회를 구성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지금처럼 희망직종과 연령, 성별을 고려한 형태로 재구성 됐다.

디딤돌 신용금고는 이런 바탕 위에서 만들어졌다. 처음 상조회를 만들 당시만 해도 당장 급한 것은 일자리를 지키는 것이었다. 없는 살림에 한달 회비 3천원을 갹출하며 상조회를 만든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취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 점점 더 분명해졌다. 빠듯한 월급으로는 갑자기 목돈이 필요한 비상상황을 버텨낼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현재 디딤돌 신용금고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박연자씨는 “없는 사람들한테는 갑자기 몸이 아프거나, 애들 학비를 내야 하거나, 월세 보증금 100만원을 올려 달라고 하는 것도 큰 부담”이라며 “이럴 때 마음 편하게 돈 빌릴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으로 신용금고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월세 보증금 100만원 앞에서 절망했던 이들이, 2009년 189명의 회원들이 3천318만7천원을 모아 디딤돌 신용금고를 시작했다. 당시 상조회 회원이었던 박연자 사무장은 2010년 금고 반상근자를 거쳐 현재는 상근자로 근무하고 있다. 금고가 활성화 되면서 상근자가 필요한 상황이 된 것이다. 이와 함께 상조회원들은 ‘금고는 우리 사업이니까 우리 회원이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을 했고 박 사무장이 그 역할을 맡게 됐다.

▲ 디딤돌 신용금고 최향난, 강연희, 전순선, 박연자 조합원이 금고 통장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뒤로 ‘힘찬 도약’이라는 글귀가 마치 신용금고의 앞날을 상징하는 듯하다.

■ 된다, 안된다 말 많았던 신용금고

상조회는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순수하게 회원들의 참여만으로 단기간에 3천300만원의 출자금을 모으기는 쉽지 않았다. 다행히 2009년 상조회는 사회투자지원재단이 실시하는 공동체 기금 지원사업에 공모해 1천800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 상조회가 제출한 사업계획서를 보면 ‘개별 회원 및 자활사업 참여자들의 긴급자금이 필요한 경우가 다수 발생되는데 대부분 의료비, 학비, 생활비 등의 내용으로 사회복지체계 내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우리 주변에 존재해 왔습니다. 이의 해결을 위해 기존 개별후원을 조직하거나 개인적으로 자금을 빌려주는 수준에 머무르거나 아예 방치되었는데 이를 개선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용금고사업을 준비하고자 합니다.’라고 되어 있다.

단순하지만 명료한 문장으로 신용금고 사업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이들은 신용금고를 통해 △상조회 회원들에 대한 신용대출과 △주민 접촉 공간 확대 및 회원 조직 증대 △지역공동체 조직으로의 성장과 타지역 공동체 조직을 견인하겠다는 사업 목적도 제시했다. 3천300만원의 출자금은 이처럼 사회투자지원재단의 지원금과 회원 출자금, 일일호프를 통해 마련한 후원금 등으로 채워졌다.

하지만 돈만 모은다고 사업이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마음을 모으는 것이 중요했다. 정식으로 등록한 은행도 아닌 마당에 무엇을 믿고 돈을 맡길 것이며 빌려준 대출금을 떼이면 어떻게 하는가, 라는 원초적 불안이 회원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박연자 사무장은 “논의 단계에서는 회원들 사이에서 ‘된다, 안된다’ 말들이 참 많기도 했었다”며 “하지만 같이 모여서 토론도 하고 공부도 하고 결정적으로 원주의 갈거리 협동조합을 갔다오고 난 다음에는 분위기가 반전되면서 금고 사업에 탄력이 붙었다”고 말했다. 갈거리 협동조합은 노숙인과 저소득 지역주민들의 자활 지원을 위한 복지형 신용협동조합이다. 노숙인들도 마음을 모아서 해낸 일이었다. 서로를 믿고 상조회를 시작한 만큼 신용금고 사업을 못할 이유가 없었다. 3천300여만원으로 시작한 신용금고는 1년만에 출자금이 8천여만원(회원 242명)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믿음은, 서로를 배신하지 않았다.

■ 30년을 기다리더라도 부실채권은 없다

   
▲ 디딤돌 신용금고에서 사용하는 조합원 통장. 맨 윗줄 ‘첫 출자금’이라는 손글씨가 정겹다.

신용금고의 운영원리는 간단하다. 원칙적으로 신용금고 조합원이 되려면 취업상조회에 가입해야 한다. 통장 개설용 가입비 1만원과 출자금을 내면 금고 조합원 자격이 주어진다.(특별한 경우에 한해 조합원이 아닌 일반 회원도 받는다). 출자금은 보통 ‘저금’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최소 1천원을 기준으로 본인이 내고 싶은 만큼 내면 된다. 꼭 정액이 아니어도 된다.

대출금은 출자금의 10배, 최고한도액 200만원까지 가능하다. 대출이자는 연 6%다. 언뜻 보기에는 다소 많아 보일 수도 있지만 매달 복리로 낮아지는 방식이다. 가령 100만원 대출을 받을 경우 처음에는 100만원의 6% 즉 6만원을 12달로 나눈 이자 5천원을 낸다. 다음달에는 5만5천원에 대한 6%, 즉 4천583원이 이자가 되는 방식이다. 대출금이 100만원 이하일 경우에는 16개월, 100만원을 초과할 경우는 최대 22개월까지 상환기간을 둘 수 있다. 처음 2개월 동안은 이자만 내고 나머지 대출기간 동안 매월 일정금액을 상환하는데, 본인이 원하면 일시상환도 가능하다.

대출 여부는 금고관리위원회가 판단한다. 금고관리위원회는 상조회 회장, 수석부회장, 사무국장이 당연직으로 참여하고 상조회를 구성하고 있는 각 분회에서 추천한 1인과 일반회원을 포함해 총 12명 이내로 구성하는데 기자가 찾은 6월에는 9명으로 구성돼 있다. 상조회가 노동자 스스로 운영한다는 원칙을 지켜가듯이 신용금고 역시 다른 누군가가 아닌 회원들 스스로 대표를 뽑아 민주적으로 만들어간다.

이렇게 구성된 금고관리위원회가 대출 적격 여부를 심사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상조회 가입기간 △금고 가입기간 △교육 참가(연 1회 이상) △성실한 출자 △성실한 상환 △직전 3개월 이내 월례회 참가 여부다. 특히, 연 1회 이상 교육 참가와 직전 3개월 이내 월례회 참가에서 알 수 있듯 상조회와 신용금고는 무엇보다 자발적인 참여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관리하는 사람과 이용하는 사람이 분리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취지의 연장선상에서 신용금고는 1년에 한번씩 출자횟수가 가장 많은 사람을 뽑아 상을 준다. 금액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출자, 즉 저금을 꾸준히 한 성실한 조합원에게 상을 주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6년간 운영된 신용금고의 현재 모습은 어떨까. 2014년 말 기준 △총대출금은 3억7천50만원(200건) △총상환금은 2억8천794만1천원이다. 2014년 한해에만 34건, 7천590만원의 대출이 이뤄졌다. 6년만에 초기 출자금의 10배가 넘는 대출이 이뤄질 정도로 신용금고는 안정적으로 성장했다. 그 사이 이른바 부실 채권은 발생하지 않았을까. 그렇지는 않았다. 총대출금과 총상환금 사이에 차이가 나는데 그중 일부가 부실 채권이다. 지금까지 약속한 상환기간까지 대출금을 갚지 못한 사람이 9명 있었다. 금액으로는 898만원이다. 박연자 사무국장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부실 채권을 회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신용정보 회사처럼 무자비한 채권 추심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박연자 사무국장의 말이다.

“지난 6년간 금고 사업을 하면서 종적을 감춘 사람도 더러 있었어요. 하지만 그 사람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언젠가는 갚을 것이라고 믿고 있어요. 30년을 기다리더라도 부실채권으로 결손처리 하는 일은 없을 거에요. 돈 없는 사람한테 갚으라고 윽박지른다고 돈이 생기는게 아니잖아요. 오히려 지금은 힘들지만 용기를 잃지 마라고 전화도 하고 문자도 넣어드려요. 그렇게 하면 나중에는 다 갚으시더라고요. 우리 금고는 ‘그런걸 위해서 만든 거잖아요?'”

상조회원을 상대로 만든 금고지만 요즘은 조금씩 지역사회로 문호를 넓혀가고 있다. 애초부터 △주민 접촉 공간 확대 및 회원 조직 증대와 △지역공동체 조직으로의 성장과 타지역 공동체 조직을 견인하겠다는 사업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해밀장터 협동조합과 미소공방, 사회적기업 창원늘푸른사람들에 대한 대출은 그런 차원에서 이뤄졌다. 최근에는 경남 햇빛발전협동조합에 2천만원을 대출해 주기도 했다.

사회적기업에 대한 대출금과 대출이자는 금고관리위원회가 별도로 결정하는데 상조회원보다 낮은 3% 이자를 적용했다. 상조회원들을 위해 만든 금고라는 측면에서는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다. 하지만 ‘기업이 잘 돼야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데 뜻을 같이해 공익을 위해 설립된 사회적기업에 특별한 저리 융자를 해준 것이다. 신용금고는 앞으로 지역 저소득층에 대한 대출까지 활동 폭을 넓혀가려고 한다. 애초에 그 역시 중요한 활동 목표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신용금고는 지난 2013년 8월 특별출자금 3천만원을 모았다. 기존 대출과는 다른 목적의 기금 적립이다. 분회 회원들이 5~60대가 많아지면서 퇴직 후 함께 살 실버타운, 공동체 마을에 대한 꿈이 부풀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과 연대로 외환위기와 그 이후 20년의 세월을 이겨낸 이들이다. 퇴직 후에도 누구에게 빚지지 않고 기대지 않고 살고 싶었다. 그 마음이 공동체 마을로 이어졌다. 회원들은 금고에서 각자 200만원씩 대출한 뒤 재출자를 해서라도 꼭 같이 살수 있는 공동체 마을을 만들자고 다짐했다.

 

■ 쉽고 편하게 돈 빌릴 수 있는 곳

디딤돌 신용금고 조합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그들은 하나같이 금고가 없었다면 크게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에게 은행 대출은 언감생심, 가족에게도 쉽게 꺼낼 수 없었던 ‘돈 좀 빌려달라’는 말을 편하게 할 수 있는 곳이 금고였다.

간병1분회 소속이자 금고관리위원 중 한 사람이기도 한 최향난씨. 최씨는 이사할 때 100만원을 비롯해 지금까지 3번 금고를 이용했다. 최씨는 “이전에 식당을 했었는데 그게 망하면서 내 이름으로는 은행거래도 할 수 없게 됐다”면서 “여기는 이자도 싸고 이웃사람한테 편하게 말하듯 돈 빌려달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최씨의 대출금 사용용도 중에는 조상님께 천도식을 올리기 위한 ‘긴급자금’도 있었다.

돈 빌려달라는 말은 옆집 사람에게도 하기 힘들지만 ‘남이 아닌 친척’이라고 해도 쉽지 않다. 우렁각시 분회 소속 전순선씨는 아이 넷을 키우면서 지금까지 4번 금고를 이용했다. 전씨는 “친척한테 돈 빌려달라고 하면 그 순간 우리 살림살이가 친척들한테 다 알려지는 것 같아서 부담스러웠다”며 “그럴 때 금고를 이용하니까 마음이 편하고 좋았다”고 말했다. 전씨 역시 한때 살림이 어려워 은행을 이용하기 힘들어 친구 이름으로 통장 거래를 한 시절도 있었다. 금고가 없었다면 아이들 학비와 생활비가 어려웠을 거라는 전씨, 작년에는 딸 시집을 보내는데 200만원을 흔쾌히 빌려썼다. 전씨 역시 우렁각시 분회가 추천한 우렁각시금고관리위원이다.

간병1분회 소속 강연희씨는 지금까지 3번 금고 대출을 이용했다. 강씨는 “전에 가게를 하나 했었는데 불이 나서 망했다”며 “이후에 상조회 활동을 하다가 금고 조합원으로 가입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상조회를 통해 취업하고 착실히 돈을 모은 강씨는 지난해 내집 마련의 꿈을 이루기도 했다. 지금은 누구보다 앞장서서 신용금고 조합원이 되라고 설득하러 다니는 열성 조합원이다.

최대 200만원이라는 금액이 때론 적지 않느냐는 질문을 강씨에게 했다. 강씨는 “실제로 조합원들 사이에서 대출금액을 좀 늘렸으면 하는 욕구가 있어서 논의를 했는데 결국 늘리지 않기로 했다”며 “한 사람이 더 많은 혜택을 보기 보다는 대출금이 좀 적더라도 더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것이 낫다고 조합원들이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신용금고는 살림살이만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까지 풍요롭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글 : 정창영 기자 (옥천신문사)

취재지원: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연합기획취재단: 옥천신문, 고양신문,충청리뷰,순창신문,태안신문, 사회투자지원재단

                                                          본 기사는 옥천신문의 동의하에 중복게재 한 것입니다. 일부 수정하였습니다.

댓글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