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의 상상력이 꽃피우는 국회가 열리기를

4・13 총선은 ‘승자 없는 선거’

생소한 결과를 안겨 준 4・13 총선. 어떤 이는 총선의 화두가 ‘경제’였다 말하지만, 정책적 쟁점보다는 정치적 셈법이 우위를 점령한 선거였다. 예상을 뒤엎고 ‘여소야대(與小野大)’ 형국이 되었지만, 야당의 승리였다 말하는 사람에겐 어김없이 핀잔이 돌아온다. 특정 정당의 성공이나 과오에서 비롯된 결과라기보다는, 현 정부의 무능과 새누리당의 독선과 오만을 국민들 스스로 심판했다고 봐야 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컨텐츠(아젠다)’가 쟁점이 되지 못하고, 독단적 정당 운영과 파행에 대한 심판이 주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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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총선의 최종 투표율은 58.0%였다. 2008년 46.1%, 2012년 54.2%에 이어 계속 상승하고 있다. 세대별로 보면, 2012년 대비 40대 이상의 투표율에선 이렇다 할 변화가 보이지 않지만, 20대와 30대의 투표율은 각각 13.2% 포인트, 6.2% 포인트 상승했다. 바야흐로 청년세대가 한국 정치의 ‘기울어진 운동장’의 지형을 움직일 수 있는 다수파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 점에서 국민의당이 석권한 호남의 세대별 투표율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호남의 정당득표율 출구조사 결과, 2030세대는 더민주당이 국민의당을 1~3% 포인트 앞선 반면, 40대 이상에서는 국민의당이 더민주당을 앞섰고, 60세 이상에서는 무려 34% 포인트의 차이로 국민의당이 압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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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의 정당득표율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2040세대는 압도적으로 야당을 지지한 반면 50대 이상은 새누리당이 압도적이다. 세대균열의 골이 전면에 등장하고, 지역구도는 옅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2016년이 선거구도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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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20대 국회의 300개 의석은 새누리당 122석, 더불어민주당 123석, 국민의당 38석, 정의당 6석, 무소속 11석으로 돌아갔다. 20년만의 3당 체제. 재보궐선거의 향방이 남아 있지만, 근래 경험해보지 못한 3당 구도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대선을 1년 6개월여 가량 남겨두고 있지만, 정권 창출을 위한 움직임은 벌써부터 분주하다.

개인적으로는 녹색당, 노동당 등 소수 진보정당들의 좌절이 깊이 아쉽다. 생태와 공존을 지향한 녹색당, 사람이 주인 되는 세상을 꿈꾼 노동당 등 이들의 공약집은 애정과 성실을 듬뿍 담고 있었다. 정당의 노선을 정책화하기 위한 아젠다 선정부터 정책 관련 현황이나 취약점, 소요재원이나 향후 전망 등까지 상세히 제시했다. <한국협동사회경제연대회의>의 4・13총선 대비 사회적경제 공약 준비과정에 참여해 정당별 공약집을 샅샅이 훑어보면서 확인한 결과다. 20대 국회가 이들 소수 진보정당들의 성실한 공약을 충분히 참고해 정책화 과정에 반영해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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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 국회의 숙제. 사회적경제기본법

2016년 5월 30일. 20대 국회가 문을 연다. 원내 사령탑인 원내대표도 결정됐다. 새누리당은 정진석 원내대표, 더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지난 5월11일 첫 회동을 가지면서 19대 국회에서 계류 중인 법안 중 합의가능한 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것을 합의했다. 과연 사회적경제기본법의 향방이 이 합의를 통해 다시 통과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사회적경제기본법은 19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에서 ‘합의 후 처리’만을 남겨놓고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묶여 정치적 논쟁에 휘말리면서 통과가 무산된 바 있다.

​  사회적경제기본법은 사회적기업·협동조합·마을기업·자활기업 등 사회적 경제 조직을 포괄하는 공통의 법적 토대와 정책 추진체계를 정비하는 법이다. 현재, 사회적기업은 고용노동부, 협동조합은 기획재정부, 마을기업은 행정자치부, 자활기업은 보건복지부가 관활하면서 저마다의 이해와 정책 및 행정 전달 체계를 달리하고 있다. 이 같은 중앙부처 차원의 행정 칸막이는 현장의 풀뿌리 운동과 조직화 과정에 균열과 혼란을 초래해왔다. 자발적 결사에 의한 공동체 활동을 통해 대안적인 가치들을 구현하고자 사업을 전개한다는 사회적 경제의 본래적 의미에 집중하지 못하고,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지원체계로 들어가야 유리할지 그 이해관계를 파악하는 데 에너지를 쏟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  ‘협동사회경제연대회의’는 총선 직전 3월 24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4·13 총선 사회적경제 공동공약 요구안 토론회>에서 ‘사회적경제기본법 제정, 국회내 초당적 사회적경제특별위원회 설치,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위한 주요 법제도 개선’을 20대 국회가 지켜야 할 3대 약속으로 제시한 바 있다. 이 외에도 ‘보육·교육·청년·보건의료·돌봄·지속가능발전·지역활성화’ 7개 분야 정책과제를 제시하기도 했다. 사회적 경제 활성화에 20대 국회가 응답할 것인지 지켜봐야겠지만,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  한편에선 공약 제안과 더불어 이를 잉태한 사회적경제 스스로에 대한 점검이 함께 진행되었으면 한다. 사회적경제기본법은 현장의 역동성을 방해하는 행정 칸막이를 덜어내는 일이기도 하지만, 사회적경제 영역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꿔가는 일이기도 하다. 사회적기업・협동조합・마을기업・자활기업 등 그간 영역별로 성취한 성과들을 내려놓고, 익숙하지 않은 다른 옷을 입어야 할지도 모른다. 장기적 전망이 있다 하더라도, 사회적경제 원리가 호혜와 연대라 하더라도, 당장의 양보는 쉬운 일이 아니다. 공동의 기술 개발과 유통망 공유 등 실질적인 일들을 함께 모색해가고 인재를 찾고 키우며 더불어 공부하는 과정을 통해 건강한 ‘사회적 관계’, ‘사회적 자본’을 키워가야 할 것이다.

​  나아가 호혜와 연대성에 기초해 대중소 경제주체들과의 공존 기반을 마련해가야 한다. 풀뿌리 운동과 강소기업, 중소·중견기업들을 아우를 수 있는 스펙트럼 넓은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이를테면, 캐나다 퀘벡의 시민사회 역량이 총망라되어 있는 샹띠에 네트워크의 한국적 모델이 본격화되어야 할 것이다. 할 일은 산적하다.

사회적경제의 정책적 상상력

우리 모두 20대 국회가 사회적경제 영역에 응답하길 바라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사회적경제가 국회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하는 것이 사회적경제 기업과 생태계의 발전을 위해 뜻을 모으고, 법과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사회적경제가 특수한 영역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경제의 가치와 방법론이 법과 제도, 정책화 과정에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  사회적경제 차원의 논의를 크게 협의의 사회적경제와 광의의 사회적경제로 나누어보자.

협의의 사회적경제 차원의 접근으로는 조직이나 기업의 형태나 활동을 중심으로 한 사회적경제 활성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사회적경제 기업의 공공조달이나 공공구매를 법제화한다든가, 사회적경제기본법을 통한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자활기업 등의 행정칸막이를 해소하고 현장 중심의 풀뿌리운동이나 기업활동이 더욱 원활해질 수 있었으면 하는 차원의 문제다. 개별 조직과 생태계의 성장을 중심에 둔 판매와 소비, 유통 등의 인프라와 문화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하는 문제일 것이다.

‘ (사)한국사회적기업중앙협의회’에서 정리한 자료에 따르면, 금번 20대 총선에서 사회적경제 관련 공약을 제시한 당선자들은 37명에 이른다. 이들 당선자들의 공약 내용을 살펴보면 ‘사회적기업 활성화, 마을공동체 사업 지원 확대, 사회적경제 활성화로 일자리 확대” 등의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이들 모두가 협의의 사회적경제에서 다뤄지는 내용들이라 하겠다.

매우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들이지만 여기에 머물러선 곤란하다. 광의의 사회적경제로서 사회적경제 방법론이 사회·정치·경제 전반의 주요 의사결정기준이나 정책규범으로 작동해야 한다. 사회적경제의 가치와 방법론으로 정책적 상상력을 꽃피운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도시재생이 필요한 지역엔 지역주민들이 지역개발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도록 하고, 커뮤니티의 공공행복을 위한 공간을 설계하고, 환경폐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원칙’과 ‘방법론’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지역주민이 함께 사고와 재난을 겪고, 국가가 지원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서로의 아픔을 위로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쉐어하우스 방식의 마을공동체주택을 상상해볼 수도 있다. ​

​  대기업이건 중소기업이건, 풀뿌리 운동을 하건 NGO 운동을 하건. 심지어 프리랜서라 하더라도 대부분 ‘일’은 사회적 협동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현 공교육제도 안에서 ‘협동’을 경험할 기회가 거의 없다. 학교협동조합이나 대학생협 활동을 통해 ‘협동’을 실제 삶의 맥락에서 체험한 인재라면 어떨까. 꼭 어떤 공식화된 법인이 아니라도 좋다. 사회적경제 동아리 등에서 ‘협동’과 공공선을 추구하는 ‘기업가정신’이 싹트게 하는 일은 사회적경제의 정책적 상상력의 씨앗이 되어줄 것이다.

사회적경제 분야에 우호적 정치세력의 확산은 반가운 일이다. 대선을 앞두고 우려가 없지 않지만, 20대 국회에 대한 기대감이 깔려 있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다만, 사회적경제가 특정 영역의 작은 이해관계 집단으로 인식되어서는 곤란하다. 주류경제와 분리해 수혜를 베풀어야 하는 어떤 곳으로 대상화되지 않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현장의 실천과 더불어 가치와 원칙을 공유한 경제적 ·사회적 담론 체계와 연결짓는 작업을 놓쳐서는 안 될 일이다.

스테파노 자마니와 루이지노 브루니는 그들의 공저 <21세기 시민경제학의 탄생>에서 인간의 사회성과 상호성을 경제생활의 중심요소라며, 개인의 이익추구와 사회성의 작동이 경제활동 안에서 충분히 양립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가가 베푸는 자선적 복지를 넘어 공동체가 자율적으로 정하고 생산해서 나누는 시민복지를 통해 공공의 행복이 증진될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시민경제 조직은 국가 복지정책의 적극적인 파트너로 기능하게 된다고 말했다. 나아가 기술의 발전으로 생산성이 증가하면서 일자리에서 밀려나는 노동력이 사적 시장이 관심을 갖지 않는 재화, 즉 관계재와 가치재를 생산하는 일로 흘러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이처럼 사회적경제가 가치적인 당위가 아니라, 인간과 사회에 대한 근본적 이해를 기반으로 한 ‘경제학’의 근간임을 역설하는 폴라니를 비롯한 스테파노 자마니, 루이지노 브루니 등 여러 사상가들의 든든한 지원이 한국 사회에서 새롭게 꽃피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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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경제’라 명명하지 않아도 좋다. 당장 혼란스럽더라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떨리는 지남철보다 그것이 가리키는 북극이 아닐까.

 

조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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