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공동기획]’의료생협’이 간판을 바꾸는 이유는? <6>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의료생협’이 간판을 바꾸는 이유는?

[사회투자지원재단 공동기획]<6>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1987년 경기도 안성군 고삼면. 마을 청년들과 연세대학교 기독학생회 의료인들이 주말 진료소를 차렸다. 당시만 해도 농촌 지역에서 제대로 된 진료를 받을 병의원이 없었다. 이렇게 7년을 활동하다 제대로 된 진료기관을 만들자고 지역 주민 300여 명과 의료인 2명이 뭉쳤다. 농협의 경험이 있는 농민들은 협동조합 형태로 병원을 만들었다. 그렇게 1994년 우리나라 최초의 의료생활협동조합이 탄생했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 안성의료생협은 조합원이 5000가구에 이른다. 안성시 인구의 10%를 차지하는 정도다. 진료소도 일반 의원 3개, 한의원 2개, 치과 1개 등 총 6개에 의사가 15명이고, 재가 장기요양기관도 운영하고 있다. 5대 암을 검진하는 시스템도 갖췄고, 직원은 110여 명에 달한다.

이제 더 이상 ‘의료생협’은 낯선 이름이 아니다. ‘전설’이 된 안성의료생협 외에도 안산의료생협, 원주의료생협, 대전민들레의료생협, 함께걸음의료생협(서울 노원), 성남의료생협, 시흥희망의료생협 등 지역 주민들이 꾸린 의료생협들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이 의료생협들이 간판을 바꿔달기 시작했다.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으로. 이들은 왜 간판을 바꿔야 했을까? ‘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 최봉섭 상임이사와 부설 교육연구센터 박봉희 소장을 만나 사정을 들어봤다. 이곳도 최근 ‘한국의료생활협동조합연합회’에서 간판을 바꿔단 터였다.

▲ 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최봉섭 상임이사(왼쪽)와 교육연구센터 박봉희 소장(오른쪽). ⓒ프레시안(김하영)
속사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의료생협의 운영 원칙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의료생협은 기본적으로 ‘협동조합’이다. 병원의 고객(조합원)은 환자이기 이전에 주인이다. 연합회의 ‘환자권리장전’을 보자.

“환자는 투병의 주체자이며 의료인은 환자를 치유의 길로 이끄는 안내자이다. 환자는 이윤추구나 지도의 대상이 아니라 존엄한 인간으로 존중받는 가운데 치료받을 권리가 있다.”

일반적인 병원은 환자를 더 많이 치료해야, 비보험 진료를 더 많이 해야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구조이다. 환자가 없으면 병원은 망한다. 그러나 의료생협은 환자 진료에도 최선을 다하지만, 환자가 생기지 않게 하는 예방 활동을 중시 여긴다.

“처방 중심이 아니라 예방과 건강증진 프로그램을 위주로 운영을 합니다. 주치의 제도를 둬서 일상적인 건강관리를 할 수 있게 합니다. 처방도 단순한 약 처방이 아니라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권유하죠. 의료생협은 타 병원에 비해 항생제 처방도 현저히 낮아요. ‘건강 마을’ 얘기를 많이 합니다. 개인의 건강을 위해서 헬스클럽에 등록해 혼자 운동하는 게 아니라, 마을 안에서 건강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지 물리적 환경을 바꾸는 시스템 개선을 고민합니다. 예를 들어 댄스, 명상, 요가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조합원들이 참여하도록 유도합니다. 상업화된 의료 환경에서 의료생협은 환자 중심으로 얼마나 믿을 수 있는 의료 서비스를 하느냐가 우리가 갖는 핵심 가치이죠.”

그런데 이와 같은 가치 활동과는 거리가 먼 ‘유사 의료생협’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다.

“의료생협이 2000년대 들어 언론에 자주 소개가 되면서 주목을 받게 됐어요. 그런데 이른바 ‘사무장 병원’이라는 곳이 의료생협법을 이용해 영리 병원을 차리기 시작했습니다. 의료생협법을 열기 위해서는 조합원 300명에 3000만 원 이상의 출자금이 필요한데, 설립을 대행해주는 업자도 있다고 해요. 서류로 조합원 300명을 꾸며서 의료생협이라는 이름으로 일단 개원을 한 뒤에 조합 운영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그냥 영리 병의원을 운영하는 거죠.”

의료생협은 2008년 61개에 불과했으나 현재 340여 개. 5년 사이 5배 이상 급증했다. 의료법상 의료기관은 의사나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의료법인, 비영리법인 등만이 개설할 수 있다. 이에 병의원 개설 자격이 없는 사무장들이 의료생협법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연합회 소속 의료생협은 18개. 나머지 320여 개 의료생협이 전부 ‘유사 의료생협’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보건복지부의 조사 결과 상당수 ‘유사 의료생협’에서 진료비 부당청구, 무자격자 의료행위, 유통기한 경과 의약품 사용 등의 불법 사례가 적발되는 등 부작용도 함께 늘어나고 있다.

“1994년 의료생협이 출범하고서 첫 10~15년 동안은 우리의 존재를 알리고 예방 중심의 새로운 시스템을 실험하면서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며 신뢰를 받기 시작했죠. 국가에서도 의료생협의 공공성을 인정해 공공 부문과의 파트너십을 확장할 기회가 왔는데, 유사 의료생협 때문에 다시 색안경을 끼고 보는 풍토가 생겨났어요. 큰 손실이죠.”

마침 협동조합기본법 논의가 시작되면서 의료생협 진영에서는 ‘사회적협동조합’으로의 전환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사실 안성에서 처음 의료생협이 시작된 것은 1994년. 의료생협법이 마련된 건 1998년이었다.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도 딱 맞는 옷은 아니었다. 협동조합 시대에 걸맞는 옷을 입을 필요가 있었다. 법 제정 과정에 적극 참여해 사회적협동조합에 ‘보건?의료’ 분야를 넣을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정부에서는 ‘유사 의료생협’이 문제가 많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죠. 또한 의료기관을 소비자생활협동조합으로 묶어 운영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봤고요. 사실 우리가 스스로 주체가 돼 건강권을 찾겠다는 활동이 정부가 못하는 의료의 공공성을 보완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적협동조합의 목적에 딱 맞는 거죠.”

2012년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면서 연합회 소속 의료생협들은 사회적협동조합 전환을 시작했다.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다. 우선 조합 설립 기준이 강화됐다. 의료생협에서는 조합원 300명에 출자금 3000만 원이 최소 설립 기준이었는데, 사회적협동조합이 되기 위해서는 조합원은 500명, 출자금은 1억 원을 넘겨야 하고, 1인당 출자금도 5만 원 이상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에 조합원과 출자금이 모자란 의료생협들은 출자금을 추가로 걷고 조합원을 늘리는 작업을 선행해야 했다.

간판을 바꾸는 것도 결코 간단치 않은 일이었다. 지난 10~20년 동안 쌓아온 ‘브랜드’를 바꾸는 것은 간판 바꾸고 명함 바꾸고 홈페이지와 소개 자료 문구 수정하는 것 이상의 출혈이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다 예상하고 감수하기로 한 것. 더 근본적인 걸림돌이 남아 있다고 한다.

“일단 보건복지부에서 사회적협동조합 인가를 까다롭게 하고 있습니다. 유사 의료생협과 구분 짓게 하기 위한 의도는 알겠는데, 좀 소극적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의 사업 지역을 자꾸 한정하려고 해요. 시군 단위가 됐던, 광역 단위가 됐던 지역을 한정 지으라고 유도합니다. 일반 의료기관은 환자의 주소지를 따지지 않는데 우리만 따지게 하는 건 어느 측면에선 역차별로 느껴질 정도로 공정하지 않다고 느껴져요. 사실 협동조합이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지역에 밀착해서 가는 게 맞죠. 하지만 그건 개별 협동조합이 스스로 결정해야 할 사안이죠! 우리의 상상력을 협소하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불만은 또 있었다. 협동조합기본법 시행령에 따르면 ‘보건?의료사업을 하는 사회적협동조합은 수급권자, 장애인, 응급환자 등을 제외한 조합원이 아닌 자는 이용을 할 수가 없다. 50% 범위에서 비조합원의 이용을 허용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은 사회적협동조합만 비조합원 진료가 가능하다.

“의료생협 때도 비조합원 진료를 50% 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사회적협동조합에서는 요건이 강화돼서 사회적기업 인증을 못 받으면 100% 조합원만 진료를 해야 돼요. 이 운동 자체가 의료의 공공성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아픈 사람은 모두 진료를 할 수 있어야 하죠.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는데 시간이 걸리는 신생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게는 사업 확장 및 안정에 치명적이죠. 진료 받으려면 일단 5만 원 출자부터 해야 하는데 환자들에게는 상당한 문턱이 됩니다.”

이와 같이 요건을 강화한 것은 ‘유사 의료생협’이 사회적협동조합으로 편입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지만, 막상 기존 주민참여형 의료생협들에게도 상당한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하소연이다.

“‘불량감자’를 솎아 내려다보니 어쩔 수 없다는 선의는 인정하지만, 사회적협동조합의 입법 취지가 공공적 역할을 활성화하기 위한 것이라면 관리보다 육성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봅니다. 법률적으로 제한하려고만 하지 말고 협동조합 주체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 줘야 한다고 봐요.”

새 옷을 입은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은 ‘공공의료’에 관해 제도적 난관을 뛰어 넘는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새로운 도약의 시기라고 봅니다. 예방 의료의 중요성에 대해 정부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죠. 예방 의료 영역이 아직 건강보험 수가에 반영되지 않고 있어요. 주치의 제도를 두고 왕진을 다니지만 역시 수가에 반영이 안 되죠. 또한 1차 의료기관 몰락으로 대사증후군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의료비 지출 속도가 어마 어마하게 높아져 가고 있죠.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도 갖고 있습니다. 최근 연합회 그리고 안산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업무 협약을 통해 공동 건강예방프로그램 운영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민관협력 실험들의 유의미한 성과들이 나오면 정책제안을 공단과 함께 해볼 수 있다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공공의료의 비율이 아직 10%도 안 됩니다. 의료협동운동이 처음에는 보건의료 운동에서 출발해서,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점점 강화해오고 있고,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하는 것도 결국은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것입니다. 공공의료 비율이 10% 수준에도 못 미치는 현 상황에서 이제 정부만으로는 어렵습니다. 지금은 민관협력을 통한 공공의료 확장의 중요한 시기라고 봅니다. 따라서 민간의 공공의료 부문을 사회적협동조합이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보건복지부는 보다 큰 틀에서 정책적인 방향을 잡고 결단해야 한다고 봅니다.”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하 의료사협)의 사업의 중심은 치료가 아닌 예방이다. 건강보험과 대부분의 병의원들은 치료에 치중하고 있다. 즉 아파야만 병원에 가서 치료받을 수 있고 그래야만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는다. 무언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왜 우리 사회는 예방을 위한 건강보험을 적용받지 못하고 치료를 해야만 건강보험 적용을 받는 것일까?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의료사협은 치료가 아닌 예방을 중심으로 의원을 운영하고 있다. 조합원들의 여러 가지 건강 소모임, 거리건강체크, 항생제 처방율 낮추기, 약이나 주사보다 생활습관에 대한 조언, 주치의사업 등은 의료사협의 사회적 역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의료사협의 어려움이 많다. 기사에서 말했듯이 유사의료생협의 문제, 보건복지부 행정절차 문제, 비조합원 이용 문제등이 있다. 또다른 문제점을 보면 먼저 수익성이 낮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치료보다는 예방과 건강증진을 위한 사업을 전개하기에 일반 병원처럼 수익성이 높지 않다. 의료사협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공공영역의 의료사업이 활성화 되어야 한다. 현재 의료사협은 국가가 하지 못하는 공공의료의 영역을 담당하고 있다. 때문의 국민겅강보험공단과 공동건강예방프로그램을 협약 ㆍ 운영하는 등의 공공의료 영역이 확대되어야 한다. 건강을 위해서는 치료보다는 예방이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깨달아야 한다.

다음으로는 의료사협에서 근무하려는 의료인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의료사협에서 근무하는 의료인은 일반병의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급여를 받고 있으며 근무시간 외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조합원, 지역사회를 위해 활동해야 한다. 그러기에 의료사협에서 근무가능한 의료인을 구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의료사협연합회는 한일의대생교류등 예비의료인 교육을 진행하고 있고 의사연수회등을 통해 전문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더나아가 일반인을 대상으로한 시민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의료생협이 의료사협으로 전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는 공공의료 영역의 확장이다. OECD국가중 우리나라가 세 번째로 낮다. 이런 와중에 진주의료원이 문을 닫았다. 적자가 이유였다. 공공의료 영역은 적자가 나더라도 국가차원에서 유지해야한다. 의료사협은 공공의료가 하지 못하는 부분을 채워주고 있다. 의료복지와 관련된 공공부문인 보건복지부, 건강보험관리공단등과 민간부문인 의료사협의 협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두 번째로는 의료복지영역의 확장이다. 의료사협의 사업은 치료, 예방등의 사업을 뛰어넘어 사람의 전생애와 관련되어 진행된다. 즉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책임지고자 한다. 소수의 이익을 위한 유사의료생협과는 달리 의료사협은 어린 아이부터 노인에 이르는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모여 운영을 논의하고 결정하게 된다.

의료사협의 노력이 사회적으로 이해되고 결실을 맺어 건강할 권리, 협동하는 사람, 건강한 세상이라는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의 가치가 이루어지길 기대해본다.

                                                                  /사회투자지원재단 김종일 연구원
기획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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