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사업에서 주민역량강화가 중요하다고 누구나 다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주민역량강화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대부분 교육, 의견수렴, 의사결정참여, 주민공모사업 등의 진행여부와 횟수 등으로 주민역량강화를 판단하고 있다. 이에 반해 사회투자지원재단(이하 재단)은 주민역량강화란 주민이 지역(마을) 내에서 필요와 문제를 발굴하고 협력과 연대의 방식으로 그 필요와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라 정의한다. 이러한 주민역량강화는 단순히 주민들에게 역량강화를 주문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여러 가지 조건이 형성되어야 가능하다.
주민역량강화는 도시재생사업의 꽃이다. 그러나 주민역량강화를 어렵게하는 상황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첫 번째로 도시재생 사업에서 지자체, 지원센터, 용역사는 주민역량강화에 대해 관점과 원칙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두 번째로 도시재생 사업에서 주민역량강화사업의 성과는 단순 산출지표에 의존하고 있다. 세 번째로 정부 중심의 현행 도시재생 사업에서 주민역량강화는 기간, 사업지 등의 한계가 상존한다. 네 번째 도시재생사업의 주민역량강화사업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접근해야 함에도 사업 담당 조직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부여 향교마을 도시재생 주민역량강화사업을 살펴보고, 위에서 언급한 내용을 다양한 도시재생사업의 경험을 바탕으로 고민해 보자.
사회투자지원재단(이하 재단)은 2020년 7월부터 2021년 6월까지 부여 향교마을 도시재생사업의 주민역량강화 사업에 참여했다. 본 사업은 크게 두 가지의 영역으로 진행되었다. 하나는 향교마을 주민들의 필요와 문제를 발굴하는 마을자원조사이고, 다른 하나는 향교마을 주민들이 팀을 구성하여 주민들이 생각한 필요와 문제를 해결하는 관심분야팀활동이다.

향교마을 주민의 필요와 문제발굴을 위한 마을자원조사
마을자원조사 영역으로 진행된 사업은 기초문헌조사, 주민실태설문조사, 주민 인터뷰, 주민아이디어 긴급타당성 조사, 마을도시재생대학(마을자원조사), 마을의 필요와 문제 발굴을 위한 주민투표 등이다.
기초문헌조사는 정부, 광역지자체(충남), 부여군의 도시재생과 사회적경제 관련 제도와 정책을 조사하고 부여군의 공약과 주요업무계획을 중심으로 진행하였다.
주민실태설문조사는 지역의 활동가와 함께 향교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가가호호 방문하여 실시하였다. 향교마을 실거주 78가구 중 71가구를 조사하였다(조사율 91%). 설문조사의 주요 내용은 기본가구현황, 인적구성, 주거환경, 범죄불안, 마을공동체를 위해 필요한 사항, 주민활동 참여의사(주민협의체 참여의사, 주민협의체 임원 참여의사, 분과활동 참여의사, 간담회/총회 참여의사, 마을공동체활동(행사) 참여의사, 주민일자리 참여의사) 마을주민 보유역량 등이었다. 주민인터뷰는 주민실태설문조사의 보완적인 성격으로 진행하였다.
주민아이디어 긴급타당성 조사는 향교마을 3기 위원장과 위원이 제안한 전통혼례와 민박사업을 주제로 진행했다. 세부적으로 정책분석, 시장분석, 경쟁자분석을 진행하여, 전통혼례는 전통문화기반 체험 프로그램으로 운영할 것을 제안하였고 민박은 독자적인 사업보다는 향교스테이와 결합하는 사업을 진행할 것들 제안하였다.
도시재생대학은 마을자원조사를 주제로 오후반과 저녁반으로 구성해서 각 5회차를 진행하였다. 주요 내용은 ➊ 향교마을 지도 그리기, ➋ 마을의 숨은 자원 찾아보기, ➌ 마을의 이슈 찾기, ➍ 해결할 문제 포커싱, ➎ 문제해결을 위한 사업계획 구상하기였다. 본 교육의 참여자는 총 28명이었다. 향교마을 주민 23명, 향교마을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 2명, 지역사회 활동가(예비사회적기업감성숲길) 3명 등이었고 교육과정에서 합의도출된 이슈는 어르신 임시쉼터, 분리배출 교육, 나무벤치 설치, 공동부엌 등 4가지였다.
그 다음으로 마을의 필요와 문제를 발굴하는주민투표를 실시하였다. 6가지의 예비 관심분야를 주민투표에 부쳤고 주민투표 결과 마을공동체활성화가 1순위(49표), 마을공동부엌이 2순위(32표), 마을여행이 3순위(20표)로 선정되었다. 이 외에 동네배움터(17표), 마을스테이(12표), 마을돌봄(9표)이 그 뒤를 이었다.
주민투표로 결정된 3가지의 주민관심분야로 마을공동체활성화팀, 마을공동부엌팀, 마을여행팀을 구성하였다. 3개의 관심분야팀은 시범사업까지 진행하는 단기과제와 사업계획을 수립하는 장기과제를 수행했다.

마을공동부엌팀은 총 26회 모임을 진행했으며 학습(회의)는 13회, 사례탐방 2회, 제빵 교육훈련 7회,반찬나눔 4회를 진행했다. 단기과제로 반찬나눔과 제빵관련 신규 아이템 발굴활동을 진행했으며 장기과제로 품질향상 및 신규제품 개발과 굿뜨래 등록 및 온오프라인 유통망 확보의 사업계획을 수립하였다.

마을여행팀은 총 21회의 팀모임을 진행했으며 그 중 회의는 7회, 체험활동 및 품평회를 5회, 마을학교 전문교육 7회, 마을여행프로그램 시연회 2회를 진행했다. 단기과제로 만들기 및 놀이 프로그램과 마을해설 프로그램 활동을 진행했으며 장기과제로는 마을해설사 양성을 위한 마을학교와 마을체험여행 프로그램의 사업계획을 수립했다.
3개의 관심분야팀은 총 66회의 주민모임을 진행하고 지난 2021년 6월 25일(금) 저녁 7시에 부여향교 명륜당 마당에서 최종보고회를 진행하였다. 향교마을 주민 포함 총 31명이 참여하였고 코로나 사회적거리두기 수칙을 준수하며 행사를 진행하였다.
먼저 김종일소장이 전체 사업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이어서 관심분야팀의 발표자가 팀활동과 제안사항을 발표하였다. 제안사항을 살펴보면 마을공동체활성화팀은 전통문화대 교수(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전통적인 마을경관을 만들자는 것과 마을잔치/축제와 마을꽃길 조성을 세 개의 팀이 같이 모여 진행하자고 제안했다. 마을공동부엌팀은 마을 주민을 지속적으로 만날 수 있는 반찬을 함께 만들고 나누는 ‘만원의 행복’을 이어나가자고, 제품개발을 위한 임시공간 마련과 지속적인 실험과 연습을 위한 설비와 장비 구입을 제안했다. 마을여행팀은 마을해설사양성과정의 기초과정에 주민들이 많이 참여해서 마을에 대한 기본지식을 알고 관광객들에게 설명할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재단은 향교마을주민, 부여군, 지원센터와 함께 연구실행위원회를 구성하고 전체 사업을 조율하였고 참여하기 힘든 주민들에게 조금이라도 많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현수막 게시 가능한 5개의 거점을 확보하여 홍보하였고 사안별로 소식지와 안내지를 가가호호 배포하였다.
부여 향교마을 도시재생 주민역량강화사업의 가장 큰 성과로 관심분야팀에 참여한 주민들의 성장이라 할 수 있다. 마을의 의제(주민관심분야)를 주민들이 선정하고 팀을 이루어 단기과제와 장기과제를 수행하면서 참여하신 주민들은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도시재생사업에서 주민역량강화를 위해 필요한 것은?
재단은 2016년부터 도시재생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진주비봉 마스터플랜 수립, 진주비봉새뜰마을사업, 진주옥봉새뜰마을사업, 서울 노원구 공릉동 희망지 사업, 부여향교마을도시재생사업, 그리고 다양한 기타 도시재생사업에 참여하였다.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래와 같이 도시재생사업에서 주민역량강화를 위해 필요한 내용을 정리한다.
1. 도시재생사업의 철학 영역
➊ 주민중심의 도시재생사업의 의미에 대해 주민, 지원센터, 지자체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 지원센터와 지자체는 “주민중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주민의 의견을 반영하기 보다는 기존에 마련한 마스터플랜을 달성하려는 실적위주의 사업방식과 곤란한 상황을 발생시키지 않으려는 안일함이 주민중심의 도시재생사업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마을의 필요와 문제가 주민 사이에서 정리되고 주민의 힘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주민중심의 사업방식을 합의해야 한다.
➋ 주민역량강화를 위해 지원센터, 지자체, 외부전문기관은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 대부분 주민역량강화를 도시재생사업기간에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거나 사업기간 내에 가능한 것으로 판단한다. 그러나 주민역량강화는 도시재생 본사업 이전, 본사업 기간, 본사업 이후에 지속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주민중심의 진정한 도시재생이 성과를 낼 수 있다.
➌ 도시재생사업지 주민활동이 하나의 섬처럼 개별적인 사업으로 진행되서는 안되고 지역사회와 협력구조를 갖도록 해야한다. 도시재생사업지에 속한 일부 주민들은 사업지 외의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것을 꺼리고 사업지 내의 주민들만 참여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도시재생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려면 지역사회와 협력하고 연대해야만 가능하다.
2. 주민의 참여와 주민중심 의사결정의 영역
➊ 보다 많은 주민의 참여를 위해 주민설문조사, 도시재생대학, 주민활동 등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주민의 실제 현황, 주민의 욕구, 주민의 바램, 주민의 참여의사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전수조사(면접조사, 최소 50% 이상)가 필요하며 다양한 교육과 활동(사업)을 통해 주민의 참여를 이끌어 내야 한다.
➋ 주민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교육, 조사, 회의 등 재생사업에 참여하는 주민들은 자신의 시간을 내어 참여해야 하므로 공간과 활동지원 등 다양한 기반조성이 이루어져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주민의 마음을 얻고 신뢰관계를 쌓는 것이다.
➌ 주민역량강화 사업을 진행함에 있어 초기 지원 방식과 이후 지원 방식이 발전양상을 가져야 한다. 사업 초기에는 아주 단순한 연락, 회의안건지, 회의록 등에 대한 지원까지도 해야하지만 차츰차츰 주민이 스스로 진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처음부터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면 주민은 피로도가 쌓이게 될 것이다.
➍ 도시재생사업의 진행에 대한 정보가 주민들에게 투명하게 전달되어야 한다. 정확한 정보가 동등하게 주민에게 전달되어야 주민들 간의 갈등을 예방할 수 있고 주민의 민주적 의사결정을 기대할 수 있다.
3. 민관 거버넌스 영역
➊ 도시재생사업의 출발점이자 지속가능성의 근간인 주민역량강화를 위해 지자체 담당공무원의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주민역량강화가 도시재생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담당 공무원들은 기존에 작성된 계획을 실행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고 주민역량강화사업을 통한 주민의 양적/질적 성장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주민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해결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모습을 주민들에게 보여야 한다.
➋ 현장지원센터는 도시재생사업과 주민활동에 대한 지원자, 조력자의 역할을 확대하고 관리자와 통솔자의 역할은 축소해야 한다. 현장지원센터가 기존에 작성된 마스터플랜 수행에 촉각을 세우면 주민활동을 대상화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도시재생사업은 빈껍데기 사업이 되어버린다. 현장센터는 주민과 협업을 위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➌ 지자체의 다른 사업 때문에 해당 도시재생사업이 타격을 받아서는 안된다. 연관사업으로 해당 도시재생사업이 탄력을 받고 활성화될 수 있도록 지자체의 협력과 지원이 필요하다.
➍ 주민 간 갈등 상황에서 지자체의 분별력 있는 대처가 요구된다. 도시재생사업지에서 주민의 갈등은 어디서나 발생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갈등상황을 어떻게 해결하고 해소하냐는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이자 어려운 방법은 주민들과 그 해결책을 논의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4. 물리사업 영역
➊ 도시재생사업에서 하드웨어 물리파트 사업이 소프트웨어 주민역량강화 사업과 병행되어야 한다. 주민들은 주민역량강화사업보다 물리파트 사업이 선행되기를 원한다. 물리파트 사업은 주민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주민역량강화사업은 물리파트 사업 진행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부여에서도 물리파트 사업이 진행되지 않아 주민역량강화사업은 물리파트 사업 진행 이후 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주민들이 다수 있었다.
➋ 도시재생 하드웨어 사업에서 주민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어야 한다. 도시재생사업에 대한 주민의 의견을 전달하면 지자체는 대체로 “안된다, 어렵다” 등의 부정적인 답변을 이야기한다. 이유는 기존의 사업계획을 그대로 수행하려 하고 사업변경은 까다롭기 때문일 것이다. 주민의 의견에 대해 긍정적으로 함께 논의하고 함께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야 주민이 더 열심히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➌ 거점시설이 도시재생사업 종료 최소 1년 이전에 완공되어야 한다. 현행 도시재생사업은 대부분 사업의 종료시점 또는 종료 이후 연장해서 거점시설을 완공한다. 이렇게 되면 주민들이 거점시설에서 주민활동을 위한 준비과정 없이 거점시설을 위탁관리하고 프로그램을 운영해야한다. 이러한 어려움을 방지하기 위해 주민이 거점시설을 시범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기간인 최소 1년 이상의 기간이 확보되어야 한다.
➍ 거점시설 등 주민활동을 위한 비품들이 사업비로 마련되어야 한다. 도시재생사업은 지자체가 쇠퇴지역을 선정하고 도시재생사업으로 신청한다. 또한 도시재생사업은 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 설립을 주요 목표로 삼고 있다. 이는 주민들의 준비가 부족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비품을 자부담으로 구입하라는 것은 준비가 부족한 주민에게 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사업체를 운영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라고 떠미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때문에 주민들이 사회적경제 방식으로 마을의 필요와 문제를 해결하려는 활동의 기반이 되는 공간과 시설이 구비되어야 한다.
도시재생사업은 도시가 쇠퇴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꼭 필요한 사업이다. 하지만 제대로된 주민역량강화 없이는 허울뿐인 사업이고 도시재생 본연의 성과를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다. 도시재생사업에서 주민역량강화는 위에서 언급한 내용들이 해결되어야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모쪼록 현재의 도시재생사업을 다양한 방식으로 성과를 분석하고 보다 현실에 기초한 도시재생사업이 진행되기를 바란다.